독서/클루지

『클루지』 정리(1) - 프롤로그 (클루지의 뜻)

아는 개 산책 2024. 7. 4. 00:16
"흔히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나는 평생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을 찾아왔다."
_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출처: 교보문고


인간은 완벽하게 진화했을까?

우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여러 가지 예시를 떠올리며

'아니'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우리는 지능이 비슷한 침팬지보다 힘이 약하고,

허리는 뭐가 문젠지 항상 아프고,

시력은 안좋아져 안경을 쓰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보다 유연하지 못하다.

 

왜 우리 인간은 먹이 사슬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코끼리 같은 힘, 매와 같은 시력, 강철 같은 허리를 지니고 있도록 진화하지 못했을까?

 

지능이 높으니 신체적인 능력은 그렇다 쳐도

우리는 왜 우리의 지능으로 체계적으로 짠 다이어트 계획을 한 순간의 유혹에 내팽겨 칠만큼 어리석을까?

 

지금부터 『클루지에 대해 알아보며 인간 진화와 더불어 뇌의 인지, 감정과 본능에 대한 허점을 탐구해보자.

 

클루지란 무엇인가?

클루지(kluge)

'서투르고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을 의미한다.

 

실생활의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의 집 캐비닛의 힌지가 하나 빠져서 문짝이 너덜거려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고 해보자.

이때 집에 있는 청테이프를 잘 붙여 빠져 있던 힌지를 대신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

이것 '청테이프 힌지'는 수년간 보수할 필요 없이 잘 작동한다고 한다.

 

'멋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문제는 잘 해결했잖아.'

 

이 '청테이프 힌지'가 바로 클루지다.

실제 발생되는 여러 클루지들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선의 과학은 최선의 공학과 마찬가지로,

종종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는 것보다

사물이 어떻게 달리 존재할 수도 있었을까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_『클루지중에서

 

우리의 신체에도 클루지가 숨어있다

이제 앞서 인간의 불완전한 진화에서 언급한

우리의 부족한 신체적 능력 또한 클루지임을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신체는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하다....(중략)... 콧구멍 위에 쓸모없이 돌기가 나 있고, 치아는 썩으며, 골치 아픈 사랑니가 나오고, 발은 쑤신다....(중략)... 등은 쉽게 뻣뻣해지며, 털도 없고 부드러운 피부는 베이고 물리기 쉬우며, 햇볕에 타기까지 한다. 우리는 달리기도 잘 못하며, 우리보다 작은 침팬지에 비해 약 3분의 1의 힘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쉽게 클루지를 만들곤 한다.

최적이건 효율적이건 아니건 작동하기만 하면 확산되며, 그것을 딱히 진화적으로 고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이름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적절함 adequacy이다."

 

우리의 마음은 클루지다

우리는 앞선 생각과 같이 "맞다! 내 척추는 클루지다."라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만,

우리의 마음도 클루지이며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이 것은 이 책 전반에서 다루는 단 하나의 주제이다.

 

자연선택은 생물의 좋은 돌연변이를 확산시킨다. 돌연변이는 지금의 것보다는 나으면 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변이(ex.4개의 탄탄한 척추, 엄청난 근력)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연선택은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local maximum이라는 단어를 쓴다. 진화는 최고 정상에 못 미치는 다른 작은 꼭대기에 이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AI의 학습에서 Loss function의 local minimum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앞서 언급한 클루지(척추, 피부 등)는 제법 높기는 하지만, 정점에는 못미치는 작은 산의 꼭대기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신경세포들은 비효율적인 간격으로 연결되며, 느린 화학물질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에너지 손실과 정보 손실을 야기한다.

우리의 눈은 초점과 빛의 광도에 따라 매우 정교하게 작동하지만, 맹점의 장애를 받는다.

 

진화는 이전 진화의 제약을 받는다.

앞서의 예시인 '청테이프 힌지'가 '힌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위에 대충 올려진 개념인 것 처럼

우리의 뇌 또한 진화를 통해 변화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얹혀져 있다.

후뇌 위에 중뇌 위에 전뇌가 얹혀져 있으며,

이는 각각 뇌과학 쪽에서 이미 정론인 삼위일체의 뇌 즉,

 

R-복합체 : 파충류의 뇌 - 우리가 생각하는 본능/생존 활동을 담당

변연계 : 포유류의 뇌 - 감정, 모성애 등을 담당

신피질(대뇌피질) : 영장류의 뇌 - 이성적, 고차원의 사고를 담당

의 형태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뇌는 말 그대로 그 전 유물에 얹혀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바뀌었을지라도, 진화하고 발전하기 전 단계의 뇌의 전유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감정은 곧 생존 본능에 의해 생겨나는 부산물이며, 우리가 고차원적으로 사고하는 것들은 전부 감정에서 온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바보같고, 우리는 항상 이성적으로 멋있게 판단하려 하지 않는가?

감정과 마음이 이런 클루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런 이성적인 생각마저 본인의 자의식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인간 본능이다.

 

클루지를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1. 진화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완벽한 진화의 산물에 대해서 진화의 과정을 역추적하는 일 보다는, 클루지를 통해 진화의 과정을 생각해내는 것이 쉽다.

예를 들어 앞서 설명했던 우리의 불완전한 뇌의 3중 구조처럼 말이다.

 

2. 우리 자신을 개선할 수 있다.

클루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현재와 맞지 않는(자연선택이 '신경'쓰지 못한) 부분들을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화나는 감정이 날 때, 무조건 싸우려 들기보다는 이를 분석하면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화나는 상대에 대한 질투라는 것을 이해하며, 그 감정이 사실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본능에 의함임을 인지하면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며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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